기다리고 기대하던 광화문 국제 단편 영화제에서 상영된 '시네마 올드 앤 뉴 1 : 국내 감독전 + 광화문 랑데부'를 보고 왔다. 기대했던 이유는 꼭 만나고 싶었던 옥감독님이 함께하는 gv가 있었기 때문이다. gv는 보통 대면으로 진행하지만 상황상 상영 전 무대인사를 진행하고 상영 후 다른 공간에서 원격으로 비대면 gv로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가는 gv인지라 기대가 컸어서 비대면인게 아쉬웠지만 비대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었던터라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문기감독의 '몽구스피킹', 이옥섭감독의 '4학년 보경이', 김도영감독의 '자유연기', 최정열감독의 '잔소리'까지 총 4개의 작품이 연달아 상영되었다. '4학년 보경이'만 보고 갔던터라 어떤 영화들이 상영되는지는 모르고 갔었는데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너무 좋았어서 '와, 이래서 영화제를 보러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 가지 의문점은 '4학년 보경이'의 경우 청소년 관람불가로 유튜브에 올라와있지만 성인 인증을 해야만 볼 수 있다. 그리고 성인의 관점에서 본 '몽구스피킹' 또한 청소년 관람불가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예매 시 15세 이상이라고 해서 영화 일부분을 편집했나 싶었는데 그것은 또 아니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은 관람기준이었달까. 아무튼 이제 각 영화별 후기를 써보려 한다.
| 우문기감독의 '몽구스피킹'
영화감독 준비생 몽구는 친구이자 영화 제작자인 병곤을 만나 본인의 시나리오를 읽어오지 않은 병곤에게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러닝타임은 총 9분.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을 제외하면 약 5-6분 동안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말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닌 카페 테이블 위에 올려진 쿠키와 음료 컵 등을 활용하여 영화를 설명해준다. 쿠키로 저렇게 실감나게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저 내용을 저 컵으로 저렇게 설명을 할 수 있다고? 감탄을 하며 영화 속 영화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몽구는 열과 성을 다해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하지만 병곤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 않다. 유명 감독과 만나기로 한 병곤에 의해 카페 구석으로 쫓겨난 몽구는 본인의 시나리오를 재떨이 취급하지만 카페 알바생의 재밌다는 한마디에 다시 한번 열과 성을 다해 설명을 하며 알바생과 호흡을 맞춘다. 9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화에 충분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고 쿠키와 음료 컵만 사용해서 설명된 저 시나리오가 실제로 촬영된다면 어떻게 탄생할지 궁금했다.
영화도 영화지만 gv에서 보여진 우문기감독은.. 왜 예능을 하지 않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정말 웃긴 사람이었다. gv가 재밌게 진행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우문기감독의 입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관객의 질문과 감독님 대답 속 티키타카는 정말 재밌었던 것 같다.
| 이옥섭 감독의 '4학년 보경이'
이옥섭감독의 졸업 작품인 '4학년 보경이'는 옥감님의 졸업 작품이며 현재 구교환배우와 함께 운영중인 [2x9HD]구교환X이옥섭 채널에서도 볼 수 있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본 작품이지만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한다고 극장에선 본 '4학년 보경이'는 색다름으로 다가왔다. 보경이에겐 4년 사귄 남자친구 덕우가 있다. 누군가 내다 놓은 소파를 덕우를 불러 작업실로 함께 옮기기도 하고 중고거래는 통해 구매한 선풍기 또한 덕우를 불러 작업실로 함께 옮기기도 한다. 보경이는 늘 그렇게 함께 했을 덕우가 아닌 선배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덕우에게 다시 설레고 싶다고 말한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 관계를 가지면서 덕우가 갑자기 기절을 한다. 기절한 덕우가 죽은 줄 알았던 보경이는 감옥에 가기 전 '마음이 설렜던' 선배를 찾아가고 그 선배와 또 관계를 가진다. 그 당시에 보경이가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보경이를 구교환배우는 '건강한 사람인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사람을 죽여서 당장 감옥에 가야 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할까?' 보경이에겐 선배를 찾아간 행동이 가장 솔직한 행동이지 않았을까 싶다.
기절했던 덕우는 깨어난 후 보경이에게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는다. 그래서 보경이의 작업실을 청소한다. 보경이의 작업실을 청소하는 덕우의 마음은 어땠을까? 수많은 부재중 전화를 보고 덕우에게 달려간 보경이는 솔직하게 말하고 덕우는 애써 정리해놓았던 물건들을 딱 '보경이가 다시 복구시킬 수 있을 정도로'만 세워놓는다. 분노를 표출하는 와중에도 보경이를 생각한 덕우였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그때 당시 유행했던 cm송들이 나온다. 한 관객이 cm송을 활용한 것에 대해 질문을 한다. 이옥섭감독은 '그때 당시 구교환 선배랑 편집을 같이 했는데 '이거 넣어볼까'하면 그냥 넣었고 자기 검열이 하나도 없던 시기였으며 계산이 아예 없고 그냥 하고 싶으면 했던 때였다.'라고 대답하며 ' 그때 참 좋았었네요.'라고 대답을 했다. 이 cm송들이 '4학년 보경이'를 더 잘 살리지 않았나 싶다.
gv 질문 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질문이 선정되지 않아 아쉬웠지만 여기에 끄적여본다. '4학년 보경이'의 포인트 중 하나는 '문'이라고 생각한다. 선배와 보경이의 대화 속에서 선배는 '문'을 가리키며 저것의 이름은 '들어와 주세요'라고 말한다. 보경이는 덕우에게 '문'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으며 '들어와주세요'라고 말을 한다. 선배에게 갔다가 돌아온 보경이를 놀래켜주기 위해 숨어있던 덕우 뒤에 매달린 그림은 '문'이었다.
옥감독님께 하고 싶었던 질문은 '덕우가 문을 메고 숨어있었던 이유는 다른 곳에 마음이 있는 보경이에게 나에게로 다시 들어와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인가요?'였다.
| 김도영감독의 '자유연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우리나라 여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한때 유명한 배우로 활동했던 지연은 결혼하고 애엄마가 된 후 그 꿈을 접었다. 남편은 육아도, 집안일도 그 어떤 것도 도와주지 않는다. 배우로 활동했던 당시 사진 속 지연의 얼굴은 살아있다. 반대로 현실의 지연은 메말라있다. 어쩌면 우울해 보이는 그녀의 삶에 유일한 낙은 힘들지만 아이이다. 사랑했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도 아이이지만 그 현실에서 힘을 얻는 원동력도 아이이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남편은 계속해서 공연을 준비한다. 그렇지만 그 돈으로 먹고 살기엔 부족하다. 남편이 지연에게 묻는다. 정말 더 이상 연기하지 않을 거냐고. 지연은 단호하게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지만 동료 배우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감추지 못한다. 그런 지연에게 유명 감독의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오고 지연은 망설이지 않고 보러 가겠다고 한다. 오디션을 보러 다녀오는 시간 동안 애를 맡길 곳을 찾지만 쉽지 않다. 애를 맡길 곳이 없다. 남편도 일을 해야 한다며 거절한다. (이 남편 진짜 너무 연기를 잘해서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었다.) 결국 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긴 지연은 오디션을 보러 가지만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관계자 그리고 받았던 대본과 다르게 단 두줄의 대사만 있는 배역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럼에도 열심히 연기를 하던 지연은 마지막 '자유연기'에서 본인의 모든 것을 내뿜는다. 확실하지 않지만 자유연기에서 보여준 그 대사는 동료 배우가 맡은 역할의 대사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그 대사 속에 지연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연은 아이 때문에 피지 못했던 담배를 입에 문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이다. 3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많이 바뀌었을까? 글쎄.
아쉽게도 김도영감독님은 gv에 참석하지 못하신다고 했다. '자유연기'에 관한 질문이 많이 올라왔는데 참 아쉬웠다.
| 최정열감독의 '잔소리'
그때 당시 카메라로 찍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3개의 필름으로 원테이크로 촬영한 영화라고 했다. gv 장소에 있던 모두가 놀랐고 어쩌면 이 영화는 필름으로 찍었기 때문에 더 마음에 와닿았던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처음부터 엄마의 잔소리로 시작한다. 그 잔소리가 너무나 현실감이 있어서 계속해서 이어지는 잔소리가 내 마음을 너무 불편하게 했다. 잔소리는 세탁기 앞에서부터 밥을 차리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밥을 먹으면서도 이어진다. 잔소리의 대상인 아들은 그때까지도 등장하지 않고 엄마는 계속해서 잔소리를 퍼붓는다. 잔소리의 내용은 모두가 살면서 엄마에게 들어봤을 잔소리들을 총집합시킨 것 같았다. '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하는 순간 앵글이 아들의 방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곳엔 침대에 누워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있는 아들이 아닌 엄마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아들이 침대에 앉아있다. 내려놓은 영정사진 속 엄마는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아닌 가장 밝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엄마의 사진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극장에선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의 그 감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충격을 잊지 못한다. 잔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모두의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정사진을 본 순간 모두의 마음이 울었을 것이다.
| GV후기
4편의 영화가 끝나고 박수가 나왔다. 4편의 영화가 모두 좋았고 개인적으로 순서 배치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잔소리의 여운은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이어서 진행된 gv는 정말 재미있었다. 후기를 찾아보니 gv 중에서도 재밌게 진행된 gv에 속한다고 했다.
대면으로 진행된 gv는 아니었지만 그래서인지 감독님들이 더 편하게 말하면서 말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말하게 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더 재밌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보통 좋아하는 감독님이 얘기하실 때만 영상을 찍는 것 같았지만 왠지 처음부터 끝까지 찍고 싶었고 거의 40분이 되는 시간 동안 핸드폰을 들고 있느라 팔이 저렸다.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좋았던 gv였고 앞으로도 관심 있는 영화의 gv가 진행된다면 꼭 가야지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영화에 관해 질문했을 때 딱 기다, 아니다.라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닌 '관객의 해석도 맞다. 그런 해석도 좋은 것 같다. 그렇게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좋은 해석인 것 같다.'라고 열어서 답해주는 게 정말 좋았던 것 같다. 이래서 생각해야만 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감독님들의 '내 손을 떠난 영화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관객의 것이다.'라는 표현이 참 좋은 것 같다.
광화문 국제단편 영화제는 10월 19일인 오늘까지 진행한다. 날짜를 확인하니 후기를 너무 늦게 올린건가 싶다. 광화문 국제단편 영화제 외에도 각 지역에서 영화제는 계속 진행 중에 있고 '서울 독립 영화제' 또한 진행 예정이다. 거기에서도 보고 싶은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꼭 티켓팅에 성공해야겠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후기를 써야겠다 마음먹었는데 글솜씨가 좋지 않아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계속해서 쓰다 보면 표현력도, 전달 방식도 늘어나 있겠지. 어떻게 하면 내 글을 읽는 분들이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꼭 이 영화의 후기를 어떻게 썼을까? 궁금해하면서 찾아올 수 있는 블로그가 됐으면 좋겠다.
끝.
'1 > 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고장난 론'을 보다 (0) | 2021.10.27 |
---|---|
영화 '듄'을 보다 (약간의 스포, 쿠키x) (0) | 2021.10.22 |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다 (스포ㅇ) (0) | 2021.10.18 |
10월, 영화 세 편을 보다. (0) | 2021.10.12 |
영화 '세마리'를 보다 (feat. 구교환전)(스포ㅇ) (0) | 2021.10.10 |
댓글